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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 이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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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섬의 역사

사할린 주에 위치한 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는, 19세기이후로 일본의 에도 막부와 러시아 제국 사이에서 영유권을 놓고 서로 다퉜지만, 1875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사할린 섬전체와 그 부속 섬들이 러시아의 영토로 인정받고 러일 국경이 확정되었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주도인 연해주를 사할린 섬에 편입했다.

러일 전쟁 말기인 1905년 7월에 일본군이 사할린 섬에 진주했다. 그리고 포츠머스 조약으로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남사할린 섬을 받았다. 당시 50도선 이북은 러시아령이었지만,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혼란에 빠지자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으로 잠시 일본군에게 사할린 섬 전체를 장악당한 적도 있었다.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붕괴한 뒤 탄생한 소련은 당시 사할린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사할린 섬의 석유 개발권을 일본에게 양도했다. 또 레닌은 사할린 영유를 로마노프 왕조의 제국주의에 의한 불법 점유라고 주장했고, 일본도 사할린 섬 전체를 반환하려고 했지만 실행하지는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중반까지는 일소 중립 조약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1945년 8월 9일에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한 다음 사할린 섬 전체와 쿠릴 열도 전체를 소련 영토로 편입했다. 소련은 1946년에 이 지역의 병합을 선언했고, 1947년에 남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를 사할린 주로 편입했다.

소련은 사할린 전체를 소련령으로 포함시키고 당시 가라후토 청의 중심지였던 도요하라 시를 유즈노사할린스크로 개칭하고, 결국 남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를 포함한 이 지역은 소련 영토로 변했다. 나중에 사할린 주에 러시아인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일본인이 많았던 지역도 현재는 러시아인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인들의 사할린 이주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연해주 일대에 거주하던 한인들 중 러시아 영토인 사할린 섬 북부로 넘어간 경우가 있었다. 또한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이 사할린 섬 남부를 차지하여 가라후토 청이 형성된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중 일부가 가라후토로 건너간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인원은 소수였으며,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까지 일제에 의해 사할린 섬으로 강제 징용되면서 본격적으로 한민족의 사할린 이동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시 상황에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한국인들을 가라후토로 강제 징용하여 이들을 탄광, 군수공장 등에서 혹사 시켰다.

일제는 1937년 만주전쟁에서 군수산업 부문의 노동력이 부족하자 1939년부터 모집의 형태로, 1942년부터는 관 알선 방식으로, 1944년부터는 강제징용의 형태로 조선인들을 끌고 갔다. 일제 말기에 이 지역에 강제 동원된 한인은 무려 15만 명 정도에 이르렀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약 43,000명의 한인이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중징용이란 강제 동원이 이루어진 것도 이 때다. 사할린에 있는 군수공장으로 해상 연료운반사업이 어렵게 되자 일본 본토 내의 석탄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사할린에 있는 조선인 노동자 1만여 명을 다시 본토로 끌고 갔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할린 고려인 이산가족이 생겼다. 1944년 8~9월에 걸쳐 이중 징용된 3200여명의 조선인들의 생사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련에게 반환된 사할린

제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나면서 가라후토는 소련에 반환되었다. 이에 따라 가라후토의 일본인들은 일본으로 송환되었으나, 일본 정부는 조선인들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을 방치했다. 광복 이후의 혼란으로 대한민국은 이들을 송환할 여력이 없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냉전으로 대한민국과 소련이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사할린의 한인들은 대한민국과 소련, 일본 세 나라의 무관심 속에서 무국적자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북한에서 이들을 회유하기도 했으나, 이들 대부분은 경상도 전라도 등 한국 남부 출신으로 대한민국에 연고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으로의 송환을 거부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일부는 소련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으나, 대한민국으로 귀환을 바라던 1세대들은 계속 무국적자로 남아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사할린 한인들의 현재

1988년 이후 대한민국과 소련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이들의 고향 방문이 추진되어 일부가 대한민국을 찾기도 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대한민국에 정착을 희망하여 사할린 교포 정착촌이 조성되었다. 2011년을 기준으로 약 3만명의 한국계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에 1945년 8월 이전 출생자인 한인 1세는 약 1,500명 정도이다. 현재까지 영주귀국 시범사업등으로 3,906명이 한국으로 영주귀국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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